2012년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남긴 유산을 두고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CJ그룹) 회장과 3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간 법정 다툼을 벌였습니다. 이맹희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주식을 아버지 이 초대 회장의 유산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알려지지 않은 차명 주식을 이 회장이 가져갔다며 법원에 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맹희 회장은 1심에서 패한 뒤 극적으로 화해를 하며 서둘러 왕자의 난을 수습했습니다.
1981년 故 김종희 창업주가 작고하면서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지만 김승연과 김호연 형제의 공동경영 체제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992년 회사가 나뉘는 과정에서 경영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다툼에 들어갔습니다.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후 3년이 넘는 소송을 벌이다가 양측이 극적 화해를 하면서 한화가의 형제의 난은 끝이 났습니다.
박용곤 전 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에게 3남인 박용성 전 회장에게 자리를 넘기라고 했으나, 박용오 전 회장은 자신을 회장직에서 내린 것이 형 박용곤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의 계획 하에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비자금 폭로전을 벌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박용오 전 회장은 두산그룹내 모든 지위를 잃고 가문으로부터 제적당한 것으로 분쟁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2002년 故 조충훈 창업주가 사망하면서 뒤늦게 공개된 유언장에 재산의 대부분을 조양호 회장이 거느린 인하학원과 대한항공에 넘기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회장,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등 네 형제는 2003년 원만한 유산배분을 위해 법정상속분에 따라 잔여재산을 분배하기로 합의하였고, 사업분할과 계열분리 원칙에도 합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2005년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이듬해 주식 보유 당사자들의 뜻에 따라 해당 주식을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에게 증여하도록 강제조정 결정을 내리면서 소송은 일단락됐습니다.
故 박인천 회장은 형제들이 모두 그룹의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형제 경영’의 지론 아래 5형제 중 4형제에게 지분을 균등하게 배분했으며, 그 뜻을 이어받아 먼저 장남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2대 회장에 올라 그룹을 경영했고, 이어 차남 고 박정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으나 2002년 지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자연스럽게 현재 회장이자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았습니다. 분쟁은 2008년 박삼구 회장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이후 위태로워지면서 4남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그룹 경영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갈등을 겪었습니다. 서로 독립 경영의 길을 걸으며 갈라섰고, 이후 양측은 지분 문제와 상표권 등을 둘러싸고 소송전으로 확대되면서 현재까지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실질적인 장남인 둘째 아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측근 인사 조치하면서 형제간의 분쟁은 시작됐습니다. 당시 현대차 그룹 창업주인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살아있었지만 고령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형제간의 분쟁을 막지 못했고, 이후 갈등 끝에 현대가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등으로 나눠졌습니다. 정몽헌 회장은 후에 2003년 대북송금, 비자금 사건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 투신해 자살했습니다. 이후에도 故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 간에 ‘숙부의 난’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이어 2006년에는 현대상선 경영권을 놓고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와 신경전을 벌인 ‘시동생의 난’을 겪었습니다.
故 허영섭 회장의 장남인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은 허 회장이 타계하면서 ‘장남의 상속을 배제한다’라는 유언을 남김에 따라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되자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허 전 사장은 어머니를 상대로 유언장이 거짓으로 작성됐다며 유언 효력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면서 모자간 피말리는 소송전을 벌였습니다.
조석래 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자신과 아들 명의의 회사 주식을 전량 매도해 효성과의 지분관계를 정리하고, 형인 조현준 사장을 포함해 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원 등 9명을 배임·횡령 협의로 검찰에 노틸러스효성 등 3개 계열사 지분을 가진 조 사장과 해당 계열사 대표들이 수익과 무관한 거래에 투자하거나 고가로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 등으로 회사에 수백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주장으로 고발하면서 가족과 완전히 등을 돌렸습니다.
故 김수근 창업주가 2000년 세 아들에게 기업을 나눠 주고 이듬해 별세하면서 장남 김영대에게 모기업인 대성산업을, 차남 김영민에게 서울도시가스를, 3남 김영훈에게는 대구도시가스(현 대성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대성그룹을 각각 경영하도록 했지만 유산, 호칭, 상호를 두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01년 2세 분리경영 이후 장남은 대성산업이 보유한 서울도시가스와 대구도시가스의 지분 처리방식을 놓고 차남과 삼남의 경영권 분쟁을 겪었습니다. 서로 ‘대성지주’ 상호를 차지하기 위한 법정 소송도 벌였고, 이후 2006년에는 모친 여귀옥 여사가 작고한 후 유산 상속을 놓고도 치열한 다툼을 벌였습니다.
1996년 故 이임용 회장이 사망한 직후 상속 처리된 재산 외에 차명 재산을 2003년부터 최근까지 단독 소유로 귀속시켜 상속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이번 소송의 핵심입니다. 故 이임용 회장의 둘째 딸 이재훈이 남동생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을 상대로 한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송장을 통해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와 이후 공판 과정에서 차명주식, 무기명 채권 등 추가 상속재산이 드러났다”며 “이 전 회장은 이 재산을 실명화·현금화하면서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몽국 회장은 2003년 1월 한라시멘트 등을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등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동생과의 법적 분쟁에 돌입했고, 그해 3월에는 한라콘크리트와 정몽원 회장 등을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등 청구소송을 내 주식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이어 4월과 6월에는 각각 자신 소유의 한라시멘트 주식 71만719주와 한라콘크리트 주식 2만5천740주를 임의로 타인에게 매도했다는 이유로 정몽원 회장 등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또 정몽국 회장은 2005년 11월 법원에서 “정몽원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라파즈 한라시멘트 주식회사 923만주와 한라건설 76만주 중 각각 391만주와 22만주를 인도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리자 다음달 “정몽원 회장 명의의 라파즈 한라시멘트 보통주식 1356만여 주 중 정몽국 전 부회장의 몫 총 450여 만주를 돌려 달라”는 주식배당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1심에서 정몽국 회장의 손을 들어줬던 법원은 2심에서 정몽원 회장이 정몽국 회장에게 회사 지분을 돌려줄 구체적인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009년 대법원에서도 원심 판결을 확정함에 따라 6년여에 걸쳤던 두 형제의 ‘쩐의 전쟁’은 방점을 찍었습니다.
롯데의 첫 번째 집안싸움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동생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 라면사업을 놓고 충돌했으며 두 형제는 이후 줄곧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신춘호 회장은 신격호 회장의 만류에도 불구, 1965년 롯데공업을 통해 라면사업에 뛰어들었고 이에 신격호 회장이 진노하면서 둘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결국 신춘호 회장은 형과의 갈등 속에 롯데공업의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계열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형제간의 앙금은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롯데마트가 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롯데라면을 선보이면서 형제간 라면 전쟁 2라운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들 대에서의 갈등은 한층 복잡합니다. 아버지와 두 형제가 얽혔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기습적으로 지주사 이사회에서 동생의 해임을 시도했고 동생이 다시 정식으로 이사회를 소집, 아버지를 이사회에서 배제시켰습니다. 신격호 회장 본인 판단에 의한 것이든 신동빈 전 부회장의 설득에 따른 것이든 이번 이사 해임 발표는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신동빈 회장과 그 측근을 배제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합니다. 사실상 신격호 회장에게서 경영실권을 박탈하고 명예직으로 강등시킨 것으로 이전까지 말 한마디로 한일 롯데를 호령했던 신격호 회장의 경영 장악력이 많이 쇠퇴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재산찬탈" 상대방 원색비난전 공산학원 운영문제가 발단 이복여동생의 재산반환 소송까지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어머니 임춘자 님의 모자갈등 가족싸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사실상 신격호 회장에서 경영실권을 박탈하고 명예직으로 강등시킨 것으로 이전까지 말 한마디로 한일 롯데를 호령했던 신격호 회장의 경영 장악력이 많이 쇠퇴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복형제 간의 다툼으로 총수일가가 경영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형제의 난은 박승복 회장이 1997년 박진선 현 샘표 사장에게 넘겨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박 회장의 이복동생 박승재 전 사장이 반발한 것입니다. 이후 박 회장을 비롯한 이복형제 일가가 우리투자증권의 사모펀드(PEF)에 지분 24.1%를 넘기면서 샘표그룹은 한동안 경영권 방어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습니다.
전락원 창업주는 전처 사이에 1남1녀, 재혼후 만난 둘째 부인 사이에 한명의 딸이 있습니다. 이후 전 창업주가 타계한 뒤 유산을 놓고 이복형제들 간에 벌어진 소송에서 법원이 장남 전필립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전 회장의 둘째 딸 전지혜가 “이복오빠가 상속재산의 공정한 분할을 거부하고 독차지했다”며 전필립을 상대로 낸 상속재산분할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지혜씨는 유언 공증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버지와는 친분이 없고 필립씨와 친하고, 유언 작성 장소가 실제 장소와 다르다는 등의 이유로 유언장이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고, 합법적인 요건을 갖춘 유언장을 작성 장소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부모자녀간 갈등이 끝에 경쟁사로 넘어가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고(故) 김성수 회장이 2007년 작고한 뒤 상속 지분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장남의 갈등이 터졌습니다. 갈등 끝에 어머니와 가족들이 김 회장의 소유 오양수산 지분을 경쟁사인 사조산업에 넘기면서 오양수산은 사조산업의 계열사로 편입됐습니다.
배다른 삼촌과 조카 등이 이른바 ‘숙질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대림통상의 이재우 회장과 그의 조카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경영권을 두고 맞붙었습니다. 이 전 부회장이 조금씩 대림통상 지분을 늘려나가 30%의 지분을 갖게 되자, 삼촌인 이 회장은 조카가 대림통상의 경영권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됐고, 양측은 지난 2003년 이후 크고 작은 분쟁을 계속 벌여왔으며, 임시주총 개최와 감사 선임을 둘러싸고 법정 공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재우 회장측은 조카와 분쟁에서 승기를 잡자, 대림통상을 지주회사인 ㈜DL과 대림통상으로 분할해 좀더 안정적인 경영권 구도를 만들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조카인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측이 발끈했습니다. 이 전 부회장은 이달 초 “지난해 삼촌의 자사주 취득은 무효”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습니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회사 분할을 통해 경영 안정을 꾀하려던 삼촌의 시도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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